불편한 편의점 서평 l 현실과의 이음새가 없어서
페이지 정보

본문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을 좋아했다. 한 번 본 것을 다시 보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미인데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하다못해 오프닝 시퀀스를 건너뛰지도 않았다. 화려한 도쿄 시부야의 교차로를 시작으로, 후미진 골목길에 위치한 심야 식당이 영업을 시작하는 그 순간과 가 정성스레 미소를 풀어 돈지루를 만드는 미장센까지. 모두가 귀해서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꼭 밤에만 봤다. 심야 식당이 문을 여는 그 시간에만. 그럼 꼭 나도 그들과 함께 식당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 회 에피소드는 가게를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려진다. 손님들의 이야기니 대부분 밤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게 중에는 야쿠자도 있고 트랜스젠더 바의 마담도 있으며 스트립걸도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그들을 보며 나는 위안을 받았다. 난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친절하지만,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회의적인 시선을 지녔으며 몹시 염세적이다.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도 싫어하고, 반대로 누군가가 나에게 그러는 것도 질색이다. 허나 그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작은 호의가 사람을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는 건지. 반대로 타인의 사소한 악의가 사람을 얼마나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건지. 사장님이 자신의 지갑을 찾아준 노숙자였던 독고 씨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려 청파동에 위치한 자신의 편의점에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따뜻하게 데운 산해진미 도시락을 내어주고, 언제든 배고플 때마다 와서 밥을 먹어도 좋다고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맡기지 않았더라면, 독고 씨는 이듬해에도 다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전연 하지 못했을 테다. <불편한 편의점>은 노숙자였던 '독고'씨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며 벌어지는 서사를 담고 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 냄새나고, 사람과 소통하지 않아 말을 더듬고, 알코올 중독이었던 독고 씨는, 편의점에서 근무하면서 몰라볼 만큼 변화한다. 독고 씨는 모든 이에게 선의를 품고 먼저 손을 내밀 줄 안다. 누구에게나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자다. 독고 씨의 정체가 궁금했다. 20대 대학생이 4일 만에 익힐 수 있었던 편의점 업무를 이틀 만에 숙지한 사람. 에쎄의 종류를 단숨에 모두 외워버리는 사람. 이름 모를 이의 지갑을 찾아주려고 얻어터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 오랫동안 공시생이던 시현 씨에게 포스 사용법을 유튜브에 올려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해, 경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돼 편의점 점장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외톨이 신세로, 야외 테라스에서 라면을 안주로 술을 마시던 경만에게 온열기를 내어주고, 딸들이 경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일러준 사람. 배우로서 지지부진한 삶을 살다 작가에 도전한 정 작가에게 최고의 플롯을 제공해 준 사람. 사람보다 개가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을 혐오하며, 자신을 편견으로 대하던 선숙 씨에게 아들과 화해가능한 단계적 절차을 일러준 사람. 독고 씨가 상대에게 무심코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요?'라며 툭툭 내던지는 것들은, 그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혜안이 담긴 제안이었다. 단순히 운이 좋아 독고씨의 제안이 맞아떨어진 게 아니라, 독고 씨에겐 은둔 고수 같은 느낌이 났다. 숨겨진 실력자. 무척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것을 애써 숨기고 있는 사람. 모든 이들의 구심점이 되어 주는 것은 '독고'씨이지만, 독고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불편한 편의점>은 편의점 사장님으로 시작해서 다양한 손님들을 지나 독고 씨의 이야기에 다다르기까지 바통을 이어받듯 화자가 변화하며 진행된다.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사장님의 가족들, 그리고 대로변에 위치하지 않기에 물품이 다양하지 않아 어딘가 불편한 편의점을 찾아주는 손님들의 이야기로 다채롭게 채워진다. 그들의 번뇌에서 나를 봤다. 나는 그들이었고, 그들은 나였다. 시현 씨에서, 정 작가에서, 경만 씨에서, 경만 씨의 쌍둥이 딸들에서, 선숙 씨에서, 선숙 씨의 아들에서, 좋은사람들흥신소 곽 씨에서, 사장님에서, 사장님의 아들에서, 그리고 독고 씨에서도, 나를 봤다. 모두에게 감응할 수 있다는 것이 한 편으론 서글펐지만, 책을 읽을수록 내 마음은 훈훈하게 덥혀졌다.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더니, 20대인 시현 씨부터 70이 된 전직 좋은사람들흥신소 곽 씨까지 저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어깃장이 났던 일들은 그리 길지 않았던 내 인생 역시 반추하게 했다. 독고 씨의 정체는 의사다. 부모처럼 가난하게 살지 않으려 악착같이 공부해 의사가 된 사람. 가족보다 자신의 체면과 지위가 중요했던 사람. 앞만 보고 달리느라 그 외 모든 것을 놓치며 살아왔던 사람. 수술 중 상담 환자를 상대하느라 대리 수술을 맡겼고, 그 결과로 젊은 여자 환자를 사망케 한 사람. 그것을 덮었던 사람. 가족에게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해 아내와 딸에게 버림받은 사람. 그 이후 스스로가 스스로를 버리고 노숙자가 된 사람. 독고 씨가 타인에게 넌지시 건넸던 말들은, 모두 본인이 겪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되돌릴 수 있다고.. 기억을 모두 되찾은 독고 씨는 자신의 잘못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에게 용서를 빌었다.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기로 했다.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가슴에 안고, 강을 건너고 다리를 건너, 독고 씨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낼 것이다. 이 소설이 재밌었던 점은, 코로나 이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코비드-19인데, 21년이 된 지금까지 역병은 현재 진행형이다. 올 4월에 출판된 이 책은 대 역병이 우리 삶에 스며들면서 벌어지는 일 또한 세밀하고 촘촘하게 그려낸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의 앤솔로지는 읽은 적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코로나를 살고 있는 삶을 그린 소설은 처음이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미드에서도, 이 지독한 역병을 다룬 작품은 없었다. 소설 속 인물들 역시 이 지긋지긋한 역병을 견디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작가의 영리한 선택으로 작품의 핍진성이 보다 향상됐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단숨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또 오늘을 살아간다. 살아갈 것이다.
'사장이 직원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직원도 손님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게도 결국 사람 장사다. 손님을 귀하게 대하지 않는 가게와 직원을 귀하게 대하지 않는 사장은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망한다는 말이다.
엄마는 왜 동네 편의점에서 안 하고 청파동까지 가냐고 하지만, 동네 편의점에서 일하며 아는 애들이나 가족을 마주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다.
시현은 개인의 꿈이 외교 문제로 무너지는 경험을 하자 비로소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그 차이를 알려주었다. 스타트라인부터 앞선 놈들은 해가 가득할수록 여유가 생겼고 능력과 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 반면 이제 경만은 탄약이 고갈되어 곧 맨몸으로 돌진해야 하는 참호 속 병사가 된 심정이었다. 아무리 벌어도 써야 할 돈은 늘어만 가는 방면 자신의 체력은 갈수록 깎여나가는 게 느껴졌다. 유일한 장점이던 성실함과 친절함의 바탕은 체력이었고 나이가 들어가며 딸리는 체력은 성실함과 친절함을 무능력과 비굴함으로 변화시켰다. 체력은 정신력조차 지배하게 되어 멘탈이 털리는 날이 늘어났고, 곧 대표와 파트너들의 무시로 돌아왔다.
"쉬어요. 생전에 박경리 선생님이 그랬대요. 여기 작가들 글 안 쓰고 어슬렁대는 것 같아도 그게 다 집필 행위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정 작가도 비울 건 비우고 작품 생각하며 시간 보내요. 생각 없이 쓰면 타이핑이지 집필이 아니잖아요."
좋은 사람들이 좋은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구나.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근데 왜... 마스크 안 해? 입 냄새나서.. 못 하는 거야?"
정 작가가 마스크 위로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자신의 비극을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알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이 가진 힘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신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불쑥 내뱉은 말이지만 그에게 답이 되었다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내게도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감히 손님이라도 될 수 있을까.
눈앞에 서울역이 들어왔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신호등을 거쳐 역 광장에 다다랐다. 무슨 단체인지 노숙자들에게 마스크를 제공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노숙자들의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을 위해서일까? 그들이 감염원이 되는 걸 경계해서일까? 둘 다일 것이다. 마스크를 쓰자 사람들이 모두 똑같아 보였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고 감염원이 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바이러스일 뿐이었다. 수만 년간 지구를 괴롭혀온 그 바이러스 말이다.
"다들 너무 자기 말만 하잖아. 세상이 중학교 교실도 아니고 모두 잘난 척 아는 척 떠들며 살아. 그래서 지구가 인간들 함구하게 하려고 이 역병을 뿌린 거 같아."
노숙자로 자리 잡은 뒤론 서울역과 그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딱 한 번 한강에 간 적이 있었다. 다리에 올라 몸을 던지려 했다. 실패했다. 사실 올겨울을 편의점에서 보내고 나면 마포대교 혹은 원효대교에서 뛰어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죄하기 위해 가족을 찾을 것이다.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사죄의 마음을 다지며 돌아설 것이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기차가 강을 건넌다. 눈물이 멈췄다.
- 이전글김제 탐정 흥신소의뢰가격 탐정 의뢰요금 단서확보을 위한 조력자 의뢰 비용 25.06.25
- 다음글김제흥신소 희망기획 김제흥신소 탐정 25.06.25